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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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6일 일요일 2면

한평생 포전길에 계신 우리 수령님


7월의 이 계절에 푸른빛 짙어가는 사회주의전야의 포전길을 바라보는 우리 인민의 가슴가슴은 한없는 그리움으로 젖어들고있다.

한평생 온 나라의 포전길을 걷고걸으신 아, 우리 수령님,

우리 수령님 맞고맞으신 눈비와 찬바람이 슴배여있고 그이의 끝없는 심혈과 로고가 자욱자욱 깃들어있는 이 나라의 포전길들에 삼가 마음을 세워보며 인민은 뜨거움에 젖어 우러른다.

사회주의농촌의 그 어디에서나 숭엄히 어려오는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낟알향기 구수하게 풍겨오는 포전에서 포기마다 소담스럽게 패인 벼이삭들을 쓰다듬으시며 인민의 행복을 그려보시는듯, 부강번영할 우리 조국의 앞날을 축복해주시는듯 환히 웃으시던 어버이수령님!

온 강산에 빛을 뿌리는 우리 수령님의 환하신 그 영상을 우러를수록 농사일을 두고 그토록 마음쓰시며 평생토록 포전길에 계시던 어버이수령님의 현지지도의 하많은 이야기들이 떠올라 목이 꽉 메인다.

묻노니 사람들이여, 서해곡창 연백벌, 재령나무리벌로부터 감자꽃바다 설레이는 백두대지며 북부산간지대의 자그마한 농장에 이르기까지 우리 수령님의 거룩한 자욱이 어려있지 않은 곳이 과연 이 하늘아래 그 어디에 있었던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언제한번 편히 쉬지 못하시고 팔순이 넘은 고령에도 공장과 농촌을 찾아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였다.》

오늘도 재령군의 인민들이 격정에 젖어 추억하는 그날은 1976년 9월 27일이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재령군 삼지강협동농장(당시)을 현지지도하시였다.

농장에 도착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몇달전 포전에서 만나주신 처녀관리위원장을 알아보시고 그새 앓지는 않았는가, 힘들지 않은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그러시고는 올해 농사가 잘되였는가고 하시며 6월중순에 오시였을 때 보아주신 품종별논벼작황을 하나하나 료해하시였다.

이어 강냉이농사정형을 알아보시면서는 실지 농사를 짓고있는 주인들의 솔직한 대답도 충분히 들어주시고 못내 대견해하시며 강냉이는 1대잡종, 비료, 관수 이렇게 세가지를 합하면 된다고 가르쳐주신 위대한 수령님.

그 전날에는 일요일의 휴식도 마다하시고 신천군 새길협동농장(당시)을 찾으시여 바지가랭이를 걷어붙인 농업근로자들과 허물없이 농사일을 의논하시며 알곡증산의 방도도 알려주시던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우리 인민들에게 하루빨리 행복하고 유족한 생활을 마련해주시려 어느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시고 언제나 농장벌에 계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심혈과 로고를 어찌 한두마디 말로 다 전할수 있으랴.

남포시 온천군에 가면 간석지벌농장이라고 불리우는 운하농장이 있다.

이 농장의 포전길에 마음을 세워보느라면 우리 인민들에게 더 좋은 식생활조건을 마련해주시려고 간석지개간의 첫 개척자가 되신 어버이수령님께서 감탕길을 앞장서 걸으시던 수십년전 6월의 그날이 떠오른다.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간석지의 넓은 땅을 바라보시면서 간석지만 개간하면 전체 인민에게 백미밥을 먹이고도 남겠다고 그처럼 기뻐하시면서 앞장에서 간석지를 돌아보시였다.

감탕도 진펄도 가리지 않으시고 바람세찬 곳으로 걸음을 내짚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일군들이 이제 더는 길이 없다고 말씀드렸을 때였다.

인민을 위한 길인데 무엇을 가리겠습니까, 길이 없으면 우리가 이 간석지에 첫길을 냅시다라고 하시며 길 아닌 초행길을 앞장서 헤치신 위대한 수령님.

이 나라의 하많은 포전길들에 새겨진 어버이수령님의 헌신의 이야기들은 그 어느것이나 끝없는 격정을 자아낸다.

어느해 여름날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또다시 이곳에 오시여 간석지벌을 옥답으로 만드시려고 친히 관수시험까지 지도해주시였다.

뙤약볕이 쏟아지고 단김이 확확 오르는 포전에서 물이 흐르는 시간까지 재보시면서 땀으로 옷을 적시신 우리 수령님.

어떤 때는 관안을 오래동안 들여다보시느라 눈이 피로하시여 안경을 벗으시고 한동안 먼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시였다.

그날 흙무지우에 그냥 앉으시여 시계를 들여다보시며 물이 흐르는 시간을 재시면서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시던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을, 그로부터 몇달후인 일요일에도 이곳 간석지농사가 걱정되시여 또다시 오랜 시간 포전길에 계시던 그이의 로고를 우리 천만년세월이 흐른들 어찌 잊을수 있으랴.

그이의 손길아래 마침내 농장에 풍요한 작황이 마련되였을 때였다.

놀라운 그 전변을 보시기 위해 또다시 이곳 농장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세찬 바다바람을 고스란히 맞으시며 오래도록 포전길을 거닐고 또 거니시였다.

정보당 예상수확고에 대한 일군의 보고를 받으시고는 이제는 간석지에서 쌀이 꽝꽝 쏟아지게 되였으니 인민들에게 백미밥을 먹일수 있게 되였다고 못내 기쁨을 금치 못하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농사가 참 잘되였소.오늘따라 들판이 별로 시원하고 좋구만.》 하고 뇌이시던 그이께서는 다시금 걸음을 옮기시다가 들판에 넘쳐나는 낟알향기에 평생시름이 다 풀리신듯 나직이 노래를 부르시였다.

아, 설레이던 벼포기들도 숨을 죽이고 하늘도 그이의 숭고한 희열의 세계에 삼가 머리를 숙이던 그날의 화폭!

이 땅의 포전길과 더불어 전해지는 우리 수령님의 위대한 헌신과 로고에 대한 이야기 정녕 천이던가 만이던가.

눈뿌리아득한 열두삼천리벌에 가도, 북방의 이름없는 감자포전에 가보아도 이런 가슴뜨거운 이야기를 들을수 있다.

우리 인민은 오늘도 신성천역에 새겨진 가슴뜨거운 사연을 감동깊이 이야기한다.

온 나라 그 어디에나 만풍년이 들게 하시려 한여름의 무더위를 헤치시며 성천군안의 농사일을 지도하시던 1974년의 그 잊지 못할 여름날 우리 수령님께서 바로 이곳의 렬차칸에서 풋강냉이 한이삭으로 끼니를 에우시고 또다시 포전길을 이어가시였다.

어떻게 하면 우리 인민을 더 잘 먹이고 이 세상에서 제일 잘살게 하겠는가.…

가시는 걸음마다에서 오로지 이 하나의 생각을 놓지 못하시며 사색을 이으시고 실천하시느라 우리 수령님께서 지새우신 밤은 또 얼마이던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느해 한 산간농장의 농사가 걱정되시여 12월의 맵짠 추위를 무릅쓰고 그곳을 찾으시였을 때의 일이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촉수낮은 전등아래에 수첩을 펴놓으시고 총경지면적은 얼마인가, 올해에 정당 몇t의 수확을 거두었으며 세대당 알곡분배는 어느만큼 돌아가는가에 대해 밤깊도록 료해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이튿날 아침 일군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점심시간이 퍽 지나도록 알곡소출을 늘이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하나하나 찾아주시였다.

어느덧 또다시 먼길을 떠나시는 어버이수령님께 한 일군이 평양까지 여러 시간이 걸리는데 때식을 넘기고 가시면 안된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러시면서 늘 그렇게 사는걸… 섭섭해마오, 이제 또 오겠소, 그때 같이 식사나 합시다라고 하시며 또다시 눈보라길을 이어가실 때 이 고장 사람들은 참고참던 눈물을 왈칵 쏟고야말았다.

자신의 정과 열을 모두 포전길에 바쳐서라도 우리 인민들에게 더 좋은 식생활조건을 마련해주고싶으신 열망이 이렇듯 강렬하신분이여서 우리 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도 늘 포전길에 계시였다.

그날은 1994년 7월 7일이였다.이른새벽부터 집무에 여념이 없으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오전 10시가 되였을 때 한 일군을 부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에게 지도에 표시된 어느한 저수지를 가리키시며 떠날 준비를 하라고 하시였다.

일군의 얼굴은 금시 밝아졌다.그 전날 그이께 호수가에 나가 잠시라도 휴식하시면서 겹쌓인 과로를 푸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지만 종시 뜻을 이루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그러나 일군의 기쁨은 순간이였다.

일기예보에서 많은 비가 내리겠다고 하는데 비가 많이 내리면 농작물이 물에 잠기게 되고 인민들이 큰물피해를 입을수 있으므로 현지에 나가서 수위와 제방상태를 알아보고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고 이르신 어버이수령님.

피곤이 푹 실린 그이의 음성을 듣는 일군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여나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는 그를 바라보시며 너그럽게 웃으시다가 후에 좋은 날을 택해서 피로를 풀러 가자는 약속을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그 약속만은 꼭 지켜주실것을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건만 그 소원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지키지 못하신 약속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이 나라 인민모두의 가슴에 응어리지게 되였다.

사람들은 어버이수령님께서 혁명생애의 마지막시기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를 정력적으로 지도하시며 나라의 경제사업과 관련한 귀중한 교시를 주시던 가슴뜨거운 화폭을 영원히 잊지 못하고있다.

하지만 그 다음날인 7월 7일에도 농사문제때문에 그토록 눈물겨운 일화를 남기신줄을 사람들은 다는 모를것이다.

진정 한평생 인민들의 먹는 문제해결을 위해 깊이 마음쓰시며 헌신의 자욱자욱을 새겨가신 어버이수령님의 체취와 숨결이 이 나라의 농촌들마다에 어리여있어 그리움으로 끓어번지는 인민의 마음속에 포전길, 이 부름은 그리도 세찬 격정을 불러일으키는것이리라.

그렇다.사회주의전야를 미소속에 굽어보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오늘도 포전길에 계신다.

인민은 천만년세월이 흘러간대도 숭고한 념원과 끝없는 사랑으로 빛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그 자욱, 그 미소를 영원히 가슴속에 새길것이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령도따라 농촌진흥의 휘황한 새시대를 기어이 열어 우리 수령님께서 평생토록 정을 기울이신 사회주의전야에 오곡백과 무르익는 풍요한 가을만을 펼치리라!

온 나라 농업근로자들의 이런 불같은 열정으로 7월의 대지는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있다.

본사기자 박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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