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대지를 활보한다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서로 돕고 이끌며 단합된 힘으로 전진하는 우리 사회의 본태와 대풍모를 적극 살려나가야 합니다.》
얼마전 만경대구역 장훈1동에서 살고있는 한성진동무는 책상을 마주하고 한자한자 초소의 전우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동무들, 저는 지금 그처럼 딛고싶던 대지를 마음껏 활보하고있습니다.》
이렇게 글줄을 달리는 그의 눈앞으로 정다운 모습들이 하나둘 어려왔다.
군사임무수행중 뜻밖에 몸을 심하게 다쳐 어느한 병원에 실려갔을 때 생사기로에 놓인 자기를 소생시키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던 의료일군들이며 다시는 대지를 밟을수 없다던 그를 일으켜세우기 위해 수년세월 기울여온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사랑과 정…
한 녀인의 모습도 떠올랐다.
의료일군들의 뜨거운 정성속에 두번째로 되는 수술을 성과적으로 마친 어느날 그는 누군가의 인기척에 눈을 떴다.침대곁에는 웬 낯모를 녀인이 앉아있었다.
정신이 좀 들었는가고, 힘든 수술을 용케 견뎌냈다고 하며 그의 손을 꼭 부여잡는 녀인은 평양시녀맹위원회 부원 최혜영동무였다.알고보니 사촌동생으로부터 부대의 전우가 부상을 당하여 큰 수술을 받는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그달음으로 병원을 찾았던것이다.
그후 녀인은 친누이와도 같이 그의 침대곁에서 매일처럼 밤을 새우며 간호했고 때로는 건강회복에 좋은 영양식품을 성의껏 마련하여 안겨주기도 했다.
이런 속에 건강상태가 한결 좋아진 그가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이였다.의료일군들은 앞으로 회복치료를 잘하면 다시 일어설수 있다고 신심을 안겨주었다.
그때부터 최혜영동무는 매일과 같이 집에 찾아와 여러가지 회복치료를 하는 그를 정성껏 간호했다.지방에 살던 최혜영동무의 부모는 회복치료에 필요한 보약재를 보내왔고 평양으로 이사온 후에는 아예 그의 집에서 살다싶이 하며 돌봐주었다.
이들만이 아니였다.
한성진동무의 치료를 맡은 병원들에서는 의료일군들 누구나 조국을 위해 한몸 아낌없이 바친 제대병사를 일으켜세우는것은 자기들의 본분이라며 그가 일어설수 있는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찾기 위해 사색과 탐구를 거듭하며 정성을 쏟아부었다.
그가 자기의 몸상태를 두고 조금이라도 나약해질세라 때없이 찾아와 힘과 고무를 준 이웃들과 장훈1동의 녀맹원들이며 사업상용무로 평양에 올라왔다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매일 저녁 찾아와 성의껏 치료해준 어느한 지방의 의료일군들의 정성은 또 얼마나 뜨거운것인가.
언제인가 한성진동무는 그들을 보기가 송구스러워 아무래도 안될걸 괜히 고생하지 말고 이제라도 치료를 그만두는것이 어떻겠는가고 이야기한적이 있었다.이때 동무의 회복을 위해 바쳐지는 모든것은 사회주의제도가 있기때문이라고, 어머니는 절대로 자식의 래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최혜영동무의 절절한 목소리가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렇듯 한 평범한 제대병사에게 바쳐진 사랑과 정성은 끝끝내 기적을 안아왔다.그가 침상에 누운지 3년만에 다시 일어나 대지를 활보하게 되였고 일터에도 섰던것이다.얼마전에는 같은 부대에서 복무한 제대군관처녀와 새 가정까지 이루었다.
한성진동무는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며 편지를 계속 써나갔다.
《동무들, 이런 고마운 제도, 훌륭한 인민을 총대로 굳건히 지켜주십시오.저도 마음속군복을 영원히 벗지 않고 복무의 길을 억세게 걸어가겠습니다.》
한 제대병사의 편지, 여기에는 한사람의 기쁨과 아픔이 곧 모두의 기쁨과 아픔으로 되고 서로 돕고 위해주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기풍이 사회적풍조로 되고있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의 참모습과 그 고마운 품을 위해 보답의 길을 변함없이 이어갈 굳은 맹세가 비껴있었다.
글 박춘근
사진 본사기자 오진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