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로동신문
2025년 4월 19일 토요일 4면

공민의 마땅한 본분, 한결같은 지향


마음먹고 달라붙는다면


당의 뜻을 높이 받들고 농촌을 물심량면으로 도와나서고있는 미더운 새세대들속에는 개천시체신소의 청년들도 있다.

지난 1월 모두가 농촌에 보내줄 거름생산에 떨쳐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초급일군인 리금철동무는 생각이 많았다.

체신소의 청년들도 거름생산에 불러일으켜야 하겠는데 선뜻 말이 나가지 않았다.인원수도 별로 많지 못한데다가 그마저도 직업상특성으로 해서 다른 사업에 동원시킨다는것이 쉽지 않은 일이였기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물러설수가 없었다.당에서 걱정하는 문제를 두고 외면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새시대의 청년들이라고 떳떳이 말할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그는 자기의 결심을 청년들에게 터놓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청년들은 농촌을 돕는 일이라면 응당 자기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문제는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하면서 저저마다 호응해나섰다.

하여 다음날부터 청년들모두가 거름생산에 떨쳐나섰다.근무를 마친 청년들도, 선로를 순회하고 돌아온 청년들도 퇴근을 미루고 어떻게 하나 더 많은 거름을 마련하기 위해 뛰여다니였다.

그렇게 마련된 많은 량의 거름과 영농물자들을 싣고 그들은 지난 2월 주변농장의 청년분조원들을 찾아가 자기들의 마음까지 합쳐 당의 뜻대로 농사를 잘 지어달라고 절절히 부탁하였다.


농장벌에 바쳐가는 진정


다섯자식을 키우고있는 속에서도 좋은 일을 많이 찾아하고있는 정평군 삼도리의 박은숙동무를 두고 사람들은 쉽지 않은 녀성이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자기처럼 당과 국가의 은덕을 많이 받으며 사는 사람은 없을것이라고, 그렇게 사는것은 이 나라 공민의 응당한 본분이고 도리라고 이야기한다.

일찌기 부모를 잃은 그는 고마운 사람들의 손길에 이끌려 부모잃은 설음을 모르고 자랐다.하기에 그는 나라의 은덕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마음으로 몇년전부터 주변농장의 농사일을 도와나서기로 하였다.

자식들을 키우면서 농장에 가서 농사일을 한다는것은 말처럼 쉬운것이 아니였다.더우기 처음 해보는 농사일이여서 속이 타는 때가 많았지만 그는 자기가 농장벌에 한방울의 땀이라도 더 묻으면 그만큼 나라의 쌀독을 채우는데 조금이라도 이바지하게 된다는 일념을 안고 힘든 고비들을 억척같이 이겨냈다.지난해에는 많은 면적의 농경지를 맡아안고 농사를 잘 지어 증수한 많은 량의 알곡을 나라에 바치는 애국적소행을 발휘하였다.

지난 2월 자기 군에 현대적인 종합봉사소와 지방공업공장들이 일떠서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가정에서 장만한 많은 량의 거름을 농장에 보내주었다.


식지 않는 보답의 마음


봉천군영예군인고려약공장 로동자 로광철동무는 우리 당이 아끼고 내세워주는 영예군인이다.

수십년전 영예군인이 되여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는 자기가 얼마나 고마운 품속에 안겨사는가를 직접 체험하면서 나라를 위한 일을 찾아할 결심을 품게 되였다.

가정을 이룬 후 안해와 함께 그는 당의 령도업적이 깃든 주변농장들을 찾아가 손에 마이크를 들고 당의 농업정책관철에로 농장원들을 불러일으키는 선동사업을 벌려왔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는 자기에게 얼마나 다심한 사랑의 손길이 와닿고있는지 다는 알지 못했다.혼자서는 걸을수 없다던 그가 당의 은정속에 다시 대지를 활보하게 되였던것이다.

하여 그는 몸이 완쾌되기도 전에 공장으로 탄원하였다.하지만 공장에 나와 일하는것만으로는 보답의 마음이 따라서지 못하는것같아 그는 농촌지원의 길을 계속 이어갔다.공장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짬짬이 거름 한줌이라도, 소농기구 하나라도 더 마련하기 위해 아글타글 노력하였으며 온 가족이 나서서 그의 일손을 도왔다.

그는 평범한 영예군인인 자기를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공장의 초급일군으로 내세워준 당과 국가의 은덕에 보답할 일념 안고 애국의 길을 변함없이 걷고있다.

본사기자



      
       10 /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