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녀가 받아안은 사랑과 정에 대한 이야기
어머니당의 은정속에 평양체류의 나날을 보내고 평안북도와 자강도, 량강도의 수재민들이 희한하게 전변된 새 마을로 돌아간지도 벌써 두달이 가까와온다.
수도 평양에서는 물론이고 온 나라 이르는 곳마다에서 그들이 평양체류의 나날에 받아안은 하늘같은 사랑과 은덕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는 속에 얼마전에는 130일간의 체류일정을 훨씬 넘긴 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가 알려져 사람들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고있다.
1만 3 000여명의 수재민들이 평양을 떠나간 후에도 한달 남짓한 기간 수도에 머무르면서 치료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간 초산군 백호산고급중학교의 문위경학생, 그의 남다른 평양체류에는 어떤 사연이 깃들어있는것인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천만금도 아끼지 않는것이 우리 당이며 당의 품은 온 나라 아이들의 진정한 보금자리입니다.》
지난해 10월 어느날 저녁 초산군에서 평양에 올라온 문위경학생의 숙소로 여러명의 의료일군이 찾아왔다.수재민들에 대한 건강검진을 진행하던 과정에 문위경학생의 몸상태에 특별한 관심을 돌리게 된것이였다.함께 올라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위경이는 5살때 뜻밖의 일로 다리와 손을 심하게 상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후 위경이는 꿈같은 소식을 전해듣게 되였다.어머니당에서 위경이가 상처를 말끔히 가실수 있게 중앙병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준것이였다.이렇게 되여 위경이는 조선적십자종합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게 되였다.
병원의료일군들이 떨쳐나와 그를 따뜻이 맞아주었다.새 이불과 갖가지 계절옷들이 정히 포개여있고 추울세라 보온대책까지 세심히 갖추어져있는 입원실은 그야말로 정든 집과도 같았다.그것을 보니 위경이의 눈앞에는 평양으로 떠나던 날
자식의 험한 상처때문에 늘 걱정을 안고 살면서도 어쩔수 없다고 여기고있던 위경이의 어머니였다.그런데 그토록 따뜻한 정을 기울여 수재민들을 맞아주신 우리
평양의 숙소도, 위경이의 고향마을도 벅적 끓었다.함께 평양에 올라온 초산군사람들은
4.25려관과 조선적십자종합병원, 고향사람들의 관심속에 이렇게 위경이의 입원치료가 시작되였다.
수술집도는 온 나라에 널리 알려진 미용외과의 림현단과장이 맡았고 의사 김명호, 마취의사 량명훈 그리고 정형외과전문병원의 유능한 의사 김태수동무가 수술에 참가하였다.담당간호원만 해도 4명이나 되니 위경이는 마치 금시라도 병을 몽땅 털어버릴것만 같아 마음이 울렁이였다.입원기간 위경이의 상처를 가셔주기 위해 병원에서는 5차, 미용외과에서는 무려 100여차에 걸쳐 협의회를 진행하였다.
위경이는 병원적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제일 많은 입원환자이기도 했다.당중앙위원회 일군들과 보건부문 일군들, 병원의 책임일군들이며 입원환자들까지 매일같이 위경이를 찾아와 혈육의 정을 쏟아부었다.그속에는 4.25려관의 학교에서 위경이의 학습을 방조해주었던 평양선생님의 가족도 있었다.
첫 수술이 성과적으로 끝난 후 위경이의 건강회복을 위해 바친 의료일군들의 진정은 또 얼마나 극진했던가.
위경이를 맡은 그날부터 미용외과의 의사, 간호원들은 스스로 위경이의 친부모가 되여 환자의 식성과 취미에 맞게 영양식사를 보장하느라 마음을 썼고 밤마다 그의 머리맡을 순간도 떠나지 않았다.림현단과장은 새 내의도 마련해주었으며 리진옥, 전향설, 윤옥, 조은혜동무를 비롯한 간호원들도 위경이를 친동생처럼 여기며 온갖 지성을 다하였다.
그 나날 위경이의 가슴에는 언제나 어머니당의 사랑이 따스히 스며들었다.
당에서는 위경이가 4.25려관에서 숙식할 때와 꼭같이 식사를 보장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었으며 계절옷과 생활필수품, 각종 도서까지 안겨주었다.입원한지 며칠후에는 위경이에게 교원들이 찾아왔다.그들은 동대원구역 새살림고급중학교 교원이라고 소개를 하고는 이제부터 자기들이 위경이에 대한 수업을 맡았다고 하는것이였다.단 한명의 학생을 위한 그것도 입원생활을 하고있는 환자에 대한 류다른 수업이였다.그때부터 매일 저녁 조선적십자종합병원 미용외과 701호실에서는 위경이를 위한 개별수업이 진행되였다.
입원한지 한달이 채 안된 11월 어느날에는 당중앙위원회의 한 일군이 위경이의 호실로 들어섰다.그는 솜옷과 가방을 위경이에게 안겨주며
포근하고 맵시있는 새 솜옷과 가방, 위경이는 너무 기뻐 어쩔줄을 몰라했다.그리고 마음속으로 몇번씩이나
수해지역 학생들모두에게 새 교복이 안겨질 때에도 당에서는 위경이의 몸상태에 맞게 짧은 소매가 아니라 긴소매샤쯔를 안겨주었다.이렇게 위경이에게는 매일 당의 사랑이 와닿았다.하기에 그 소식을 전해들은 그의 부모는 격정에 겨워 마을사람들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위경이가 평양으로 떠나던 날 우리의 걱정은 정말 컸습니다.변변치 못한 자식을
병원의료일군들의 말에 의하면 위경이는 입원할 때보다 체중도 눈에 띄게 늘고 키도 무척 컸다고 한다.
당의 은정속에 산골군의 평범한 소녀가 수도 평양에서 마음속그늘을 가시고 밝은 웃음을 되찾은 사실, 과연 우리 사는 이 땅이 아닌 어디에서 이런 가슴뜨거운 이야기를 들을수 있으랴.
지난 1월 28일, 위경이는 평양에서의 소중한 추억을 가슴에 안고 사랑하는 부모와 희한하게 일떠선 새 보금자리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떠나갔다.당중앙위원회 일군이 위경이와 평양에서부터 자강도 산골군까지 동행하였다.
평양체류의 나날 한 소녀가 받아안은 뜨거운 정에 대한 이야기, 그것은 진정 온 나라 아이들을 친부모의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기에 우리 인민은
본사기자 오은별